[팬픽]베르로랑 이야기 팬픽. -하루살이 소녀 by 잉령 팬픽,팬아트,축전

이는 소녀들의 이야기가 한번의 끝을 맺고 시작을 맞이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최연소로 위치퀸이 된 셀리엔느 아이레스. 순백의 천사라 불렸으며 지금은 순백의 여왕이라 불리는 그녀와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세상은 평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제노나힐이 완전히 사라짐과 동시에 마족이 인간을 공격할 이유 역시 사라졌다. 다만 제노나힐의 소실은 마족의 존재의의 역시 없애버리고 말았고 이는 마족의 행동원리인 '제노나힐의 그릇이 나타나면 파괴될때까지 인간을 죽인다'를 없애긴 하였으나 본능에 새겨진 '인간을 죽인다'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제노나힐이 소실되던 그 때 우두머리 격인 '허무의 왕'이 지워지고 대다수의 마족들이 지워지거나 끝을 맞이하였다. 그렇기에 아직 열려있는 홀에서 가끔씩 나타나는 마족의 잔당을 제외하면 더 이상 인류를 위협하는 것은 없었으며 가끔씩 나타나는 소수의 마족은 인류의 힘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정도였다.

또한 퍼스트레이드 때 열린 게이트 역시 얼음의 성 실베르부르그 밑에 봉인된 그대로 다시 열릴 일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게이트에서 어떠한 전조도 없이 한 소녀가 홀연히 나타났다. 이는 게이트의 결계가 무사한지로 직결되는 큰 문제였고 당연히 현 위치퀸인 셀리엔느에게 보고되었다. 그리고 셀리엔느는 급히 결계의 상황을 확인하러 갔으나 아무 이상도 없었다. 단 하나의 문제도 없이 결계는 정상작동하였던 것이다.

"결계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믿기 힘들지만 결계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습니다. 이 상황에선 저 소녀가 깨어나길 기다릴 수 밖에 없을것 같네요"

결국 남겨진 단서는 의식을 잃은채 나타난 소녀 뿐이었고, 셀리엔느는 소녀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해보았다. 11살 남짓 되어보이는 소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에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듯 피부는 희다 못해 약간 창백하였다. 귀여운 인상이면서도 동시에 건드리면 부서질 듯한 느낌을 주는, 약간 독특한 분위기의 소녀일 뿐. 어디를 봐도 마족과는 관계가 없어보였다.

때문에 깨어나서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것을 막기 위해,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이 밝혀진다면 임시로 보호자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과거 허무의 왕이나 허무의 기사의 능력을 생각해 볼 때 대응이 가능한 사람으로는 셀리엔느 그녀가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어 잠시 아이를 맡게 되었다.

그렇게 결정되어 소녀를 방으로 데려오고 잠시 후, 깨어난건지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잠에서 깬 듯 멍하게 주위를 둘러보다가 셀리엔느를 발견하였고, 잠시간 쳐다보다가 웃으며 첫마디를 꺼냈다.

"에.....안녕하세요?"

그 웃음은 아주 자연스러웠고 별달리 문제가 될만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데도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작은 위화감을 눌러두고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로 하고자 셀리엔느는 대화를 이어가기로 하였다.

"안녕 얘야. 그나저나 자기소개를 해주지 않겠니?"

그리고 여전히 웃는 표정을 띄운 그대로 소녀는 말을 이어갔다- 다만 그 내용도 웃으면서 말할 만한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말이다.

“음~ 정말 유감스럽게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네요~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말하는 소녀의 모습은 어딘가 과장되어있단 느낌을 주었다. 마치 연극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럼 자신의 관해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거니?”

“그러게요.. 전 마법사였고 어디론가 이동을 하려고 했었는데 뭔가 문제가 생겼다 정도랄까요? 그 전에 뭘 하고 있었고 왜, 어디로 갈려고 했는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네요.”

소녀의 행동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이 걸렸으나 당장에 의심스러운 점은 없었다. 기억을 잃었다고 하는 말을 믿기에는 소녀가 너무 태연했지만 당장 의심해보아도 소용없다. 마법사라고 하니 소녀의 신원을 조사해두라고 하면 어디 출신인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 때 까지만 맡아두면 되리라 생각한 셀리엔느는 소녀에 대해 좀 더 아는 것은 잠시 미뤄두기로 하였다.

“그렇구나....일단 너도 기억에 문제가 있어서 혼란스러울테니 쉬어두렴. 내일 마저 얘기하자.”

“알겠습니다~ 전 여기 있으면 되는건가요?”

“응, 내일 다시 찾아올테니 기다리고 있으렴.”

셀리엔느는 소녀에 대해 찾아볼 것을 지시해두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평소의 업무로 돌아간 그녀는 하루를 마저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 해가 뜨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다시 소녀의 방(감시목적으로 가둬둔 방에 가깝지만)으로 가보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만히 앉아있는 소녀를 볼 수 있었다. 별달리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반응한걸까. 고개를 돌려 셀리엔느를 본 소녀는 다시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아...오셨네요?”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뒤틀려있다. 자신들의 사정으로 아무런 설명도 없이 붙잡혀 있는 소녀였다. 하지만 소녀 당사자는 알고 있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태연하고 느긋하다. 모른다면 사람을 의심할 줄 모르는 것이지만 안다면 상당히 성격이 나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이러한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은채 셀리엔느는 대화를 이어갔다.

“응, 그나저나 내가 자기소개를 안했었네. 난 셀리엔느 아리엔스라고 해. 난 너를 뭐라고 부르면 되겠니?”

“셀리엔느씨인가요... 말씀드렸다시피 이름 같은 것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굳이 붙인다면...

이페메라(Ephemera/하루살이) 정도가 적당하려나요~“

하루살이, 다른 누군가의 이름도 아니고 자신의 이름을 하루살이라 붙인 것이다. 동시에 셀리엔느는 알게 되었다. 소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딱히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는 지금은 가만히 두고 있지만 상황이 안 좋아지면 언제 죽임 당할지 모른다는 것까지. 그런 것이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자신을 떠볼 리 없다. 그렇다고 일일이 반응해줄 필요는 없었기에 그냥 넘기기로 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구나... 줄여서 이페라고 부를건데 괜찮겠니?”

“문제 없답니다~ 부르고 싶은데로 부르시길.”

이렇게 겉보기로는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를 둘은 이어갔고 셀리엔느는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질문해보기로 하였다. 이번에도 모른다는 대답이 나오면 신상에 대해 조사하라고 시켜둔 것의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나저나 하룻밤 지내면서 뭔가 생각난 것은 없니...?”

그러자 별다른 대답은 없이 일어나서 셀리엔느에게 다가가는 이페. 그리고 셀리엔느를 올려다 보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생각난거라..... 전 사실 마족이랍니다~”

즉시 최악의 상황에 대한 긍정이 나왔다. 하지만 죽을 것을 알면서도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뭔가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일까? 끊임없이 맴도는 생각을 정리하며 셀리엔느는 재차 질문해보았다.

“아니 그러니까 뭐ㄹ..........”

“농담이에요 농담~ 저 같이 사람처럼 생긴 마족이 있을 리 없잖아요~”

키득거리는 이페의 말에 끊겼지만 말이다. ‘악질적인 농담에도 정도가 있다’고 셀리엔느는 생각했다. 저렇게 본인 입으로 말하고 본인 입으로 부정당하면 뭐라고 판단할 수도 없다.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 너무나도 갑작스레 변하는 상황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소녀는 셀리엔느를 지나쳐 방을 나갔다.

“그럼 너무 방안에 있기만 해도 답답하니 저는 산책을 좀 나갈게요~”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이페를 잡으려 해보았으나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방금 문을 나섰는데 근처에 없는 것이다. 마법사였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다시 무의미한 생각이 반복되려는 것을 끊고는 셀리엔느는 소녀를 찾아 나서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때 셀리엔느에게 소녀에 대한 조사의 결과가 보고되었다. 그 결과는 -

“그 말씀하신 소녀 말입니다만....... 어디에도 그 소녀에 관한 기록이 있지 않습니다. 기록을 인위적으로 지웠다면 그런 흔적이라도 남게 되어 있는데 애초에 기록이 없는 것이 아니고서야.......”

“알겠습니다. 일단 계속 조사해주세요.”

상황은 갈수록 알 수 없어지고 있었다. 인간처럼 보이지만 어디에도 기록이 있지 않고 바로 부정하긴 했지만 본인 입으로는 마족이라는 말까지 꺼내졌다. 어느 말이 사실이고 어느 말이 거짓인지 구분할 방법도 없다. 결국 얻을 수 있는 결론은 하나. 이페와의 대화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 무력으로 알아내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는 없다는 결론이었다.

생각은 신중해도 행동은 신속해야한다. ‘산책’이란 말을 남기고 사라진 소녀를 찾기 위해 셀리엔느는 소녀가 발견되면 자신에게 연락할 것을 말해두고 성에서 나왔다. 그리고 비행하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성 주변부터 뒤지기를 수시간, 하지만 어디에도 소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일단 성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였을 때 셀리엔느에게 온 연락. ‘베르로랑 마법학원에서 소녀의 모습이 발견되었다.’ 언제,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생각할 여유는 없다. 갔을 때에는 이미 사라졌을 수도 있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소녀가 정말 마족이라면,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의 마족은 이태까지 허무의 기사나 왕 밖에 없었다. 즉, 소녀 역시 그 정도의 힘이나 특수능력을 가졌을 확률이 높고 문제를 일으키면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소녀의 뒤를 쫓을 것을 명렁해두고 셀리엔느는 최대한 속력을 내서 베르로랑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베르로랑에서는 셀리엔느의 명령을 받은 사람이 소녀를 미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고 그저 학원을 구경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셀리엔느가 도착했을 무렵, 소녀는 여전히 학원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소녀에게 간 셀리엔느는 소녀를 잡으며 말을 걸었다.

“산책 치고는 너무 멀리 온 것 같은데?”

“에...뭐 일주 후에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말이죠~”

“일주일이나 산책을 나가는 사람은 없다고 보는데..”

“아뇨, 지구를 일주한 후에 돌아갈 생각이었다구요.”

“스케일 더 커졌잖아! 그리고 그건 세계여행이지 산책이 아닐텐데.”

소녀의 페이스에 휩쓸렸다. 대화를 하면 항상 휩쓸리게 된다. 공공장소에서 무차별 공격을 하긴 힘들다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지만 아직도 소녀를 공격하는 것에 망설임이 있다. 허무의 기사나 허무의 왕과 달리 인간에게 적의를 보이지 않는 점이나 인간처럼 보이는 것이 걸리는 것이리라.

다만 셀리엔느가 소녀에게 집중해서 간과한 사실은 이정도 시간이 흘렀으면 셀리엔느가 베르로랑에 온 사실이 퍼지기엔 충분했고(?)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셀리엔느씨 결혼해주십시오!”

“아, 미안하지만 오늘도 거절이야.”

셀리엔느에게 청혼해오는 페이스가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차인 페이스는 다시 고백할 준비를 위해 돌아가려다 셀리엔느 옆의 소녀를 발견했고, 평소에 셀리엔느 옆에 보이던 얼굴이 아니었기에 궁금증이 생겨 질문을 하였다. 물론 이것이 셀리엔느에게 곤란함을 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만.

“그나저나 셀리엔느씨. 옆의 아이는 누군가요?”

대답하기에 약간 난감함을 느낀 셀리엔느가 말끝을 흐리는 사이, 소녀가 먼저 말해버렸다.

“아 그러니까 얘는.....”

“딸이랍니다~!”

물론 그것이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소녀는 그 발언이 주변에 가져오는 충격과는 반대로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이러한 폭탄발언에는 셀리엔느도 잠시간 마음의 평정을 잃었고

“아니 그게 무슨소리ㅇ....!”

“우으....엄마 나 버리는거야.....?”

놀랍게도 소녀는 방금까지 웃고 있었으면서 울먹이는 표정으로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금 셀리엔느의 말을 끊어먹은 소녀의 발언과 연기는 상황을 악화시켰고 너무나도 급작스레 변하는 상황에 셀리엔느를 포함한 주변 관중이 죄다 굳어버렸다. 그 동안 소녀는 다시 유유히 걸어가기 시작했고

“농담이었답니다~ 셀리엔느씨 나이에 저 만한 딸이 있을 리가 없죠~”

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당사자의 입으로 진실이 밝혀지고 나서도 사람들의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는데 잠시간의 시간이 걸렸고 거리에는 미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비교적 빨리 정신을 차린 셀리엔느 역시 사람들로부터 소녀에 대한 질문을 받기 전에 소녀를 찾아 자리를 떴다.

소녀를 찾아나선 셀리엔느는 다행히도 소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 멀리 가지는 않은 것인지 성으로 돌아가는 방향에서 발견한 것이다. 다시금 소녀를 붙잡은 셀리엔느는 소녀에게 이래저래 휘둘린 탓에 소녀의 어깨를 잡은 손에 약간(?) 힘이 들어갔다.

“드디어 잡았네... 이것저것 설명을 듣고 싳은게 많은데 괜찮겠지?”

“잡았다뇨~ 마치 제가 도망이라도 간 것 같네요. 어디까지나 산책이라니까요?”

아플 법 하면서도 소녀는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키득거렸다. 다만 셀리엔느가 더 이상 헛소리를 받아줄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여러가지를 설명해줘야겠어.”

“알았어요~ 성에 돌아가서 뭐든지 죄다 설명해드릴게요~ 성으로 돌아갈 때 까지 정도는 기다려주실 수 있죠? 이런 길가는 듣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고.”

“알겠어, 최대한 빨리 성으로 날아가지.”

이태까지 한 행동이 의외라 할 정도로 흔쾌히 허락한 소녀는 키득이고는 말을 이어갔다.

“굳이 날아갈 필요 없어요~ 바로 가면 된답니다.”

그렇게 말한 소녀가 손을 휘두르자 하나의 구멍이 열렸고 흡사 소형 게이트인 홀을 보는 것과 같은 생김새였다. 그 모양에 셀리엔느가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소녀는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는 셀리엔느의 손을 잡고 구멍으로 들어갔다.

한순간 시야가 번쩍이고 나서 보인 곳은 실베르부르그의 옥상, 주위를 둘러본 셀리엔느는 난간 쪽에서 성 아래를 내려다보는 소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말을 걸려 하자 소녀는 뒤돌아 셀리엔느쪽을 보며 말을 시작했다.

“음....일단 약속대로 모든걸 설명해드리기로 하죠~ 뭐부터 설명해드려야 할려나...”

“가능하면 마족과 무슨 관계인지부터 설명해줬으면 하는데.”

알고 싶은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대답에 따라 마족 측에 허무의 기사나 허무의 왕과 같은 존재가 더 없다고 장담 할 수는 없어진다.

“뭐라고 해야하나... 결론부터 말하면 마족 맞아요. 마족이란 것이 어떤 이유로 발생했는지는 아시죠?”

“인간, 그리고 세계가 무의식중에나마 세계를 유지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그러한 의지가 모여서 생겨난 존재.....”

“정답, 그리고 전 뭐... 그러한 의지가 유독 강한 사람이 있었고 그게 그대로 뭉쳐져서 생겨났다는 느낌이랄까요...?”

“묘하게 의문형이네. 확실하게 대답은 못하는거야?”

“그렇죠. 저도 제가 원래 뭐하는 사람이었는지 기억 못하니까요. 다만 제가 원래 그러한 사람이었고 힘 역시 이어졌다고 추측할 뿐이에요. 확실하게 대답해 줄 수 있는 자 따위 존재하지 않는달까요.....”

셀리엔느가 제대로 대답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고 있는 분위기였으나 소녀는 약간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냥 그것 뿐이에요. 뭐.. 믿어달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이래 뵈도 누구 죽인 적은 아직 없답니다.”

“마족이면서? 마족은 인간을 살해한다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었나?”

“말했잖아요? 믿어달라고 할 생각은 없다고. 그래도 변명해보자면 제 베이스가 된 인물은 어지간히도 무른 사람이었나 봐요. 인간에 대한 살의도 옅고 죽이려 하니까 거부감이 들더라구요~ 뭐 이 부분은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넘길게요.”

업무로서는 소녀가 마족인가 아닌가의 판별만 끝나면 끝내도 됐었다. 하지만 그녀 개인의 궁금증이 남아 소녀의 이야기를 계속 듣게 되었다.

“뭐 솔직히 마족이 사람을 죽이지 않고 뭘 했냐.... 라고 물어보시면 딱히 답할 만한 것은 없어요. 앞에 나서지는 못하겠으니 애프터서비스를 했다고 해야겠죠.”

“애프터서비스? 뒷정리라도 했다는건가?”

“일단 계속 들어보세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진 제가 생각한 것이 하나 있었죠. 영문도 모른 채 마족에게 죽임을 당하면 억울할 거 아니에요? 그 때의 원한이나 절망, 분노 같은 것이 남아서 원령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억울하게 죽은데다가 죽어서도 쉬지 못한다니 불쌍하잖아요?”

이태까지 보여온 모습과 다르게 일반적인 감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진실인지 아닌지 알 길은 여전히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마침 전 영매라고 해야하나...? 혼에게 간섭할 수 있는 특이체질이었나 봐요. 정말 억지스럽죠~ 우연인건지 기적인건지. 마족 주제에 인간한테나 나타나는 체질이라니. 어쨌든 그래서 선택한 것이 그거에요. 마족에게 죽임당한 사람들에게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이죠. 이유는 알고 죽어야 덜 억울할 것 아니에요?”

“원령하고는 별로 관계가 없는 거 아닌가? 원령이 생긴다는 얘기는 왜 한건데?”

“예 뭐....... 그 쪽이 제 일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니 설명해드려야죠. 간단해요. 원한 같은 것을 풀어주지는 못하니까 제가 다 받아가는 거죠. 그렇게 죽임당할 때의 원한, 절망, 분노 등을 제가 다 받아가고 나면 원령이 돼서 남아있도록 유지시키는 힘이 없어졌으니 성불이 가능해지구요.”

“잠깐만, 그런 것들을 받아가도 아무 문제도 없는거야? 마족에게 죽임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닐텐데?”

소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처음으로 보이는 감정의 변화였다 - 이태까지 표정의 변화는 단지 연기였으리라고 셀리엔느는 언제부턴가 눈치 챘다. 처음에 느껴졌던 위화감은 그 때문이리라- 잠시간 침묵하다가 말을 이어가는 소녀.

“마족한테 왠 걱정이시람... 뭐 결론을 말하자면 문제없을 리가 없죠. 처음에는 몰랐는데 수가 많다 보니 쌓이고 나니까 이런 게 생기더라구요.”

소녀는 자신의 손 위에 검붉은색의 구체를 만들어보였다. 사람으로 하여금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일반인은 공포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그런 덩어리였다. 그리고 셀리엔느가 무어라 질문하기도 전에 소녀는 말을 이어갔다.

“기본적으로는 사람의 절망을 원동력으로 하는 제노나힐과 비슷해요. 다만 그 정도의 힘은 없달까요? 뭐든지 지워버리지는 못하지만 주변의 것을 침식시켜서 서서히 없앨 수는 있답니다. 생명체의 경우는 가지고 있는 마력부터 없애지만 말이죠. 제노나힐에 의한 멸망을 막으려고 생겨난 마족이 제노나힐과 비슷한 힘을 얻다니 아이러니하죠~”

“그래서, 그런 위험한 것을 담고 있는 너는 괜찮냐는 말이지.”

“노코멘트. 랄까 문제가 없었으니 제가 아직 여기 살아있겠죠? 뭐.... 24시간 풀로 원한에 가득 찬 소리나 절망에 빠진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는게 흠이지만요.”

괜찮을 리가 없다 - 아무리 정신이 강한 사람이라도 저런 것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잠깐이라면 모른다. 하지만 1세기다. 퍼스트 레이드로부터 지난 시간이 그 정도 되는 것이다. 소녀 나름의 생각을 하고 시작한 일이니 퍼스트 레이드 때부터 하지는 않았더라도 100년이 다 되갈 것이다. 소녀의 뒤틀린 성격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잠깐만... 넌 퍼스트 레이드 때부터 그 일을 하진 않았어, 그리고 여긴 게이트가 열린 장소지... 설마..?”

씁쓸하게 웃고 있던 소녀는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어갔다.

“역시 머리 좋으시네요....... 맞아요. 퍼스트 레이드 때 하지 못했으니 이제 마무리 짓고 쉬려고 왔답니다. 뭐... 죽은 사람이 많다 보니 여러모로 무리가 좀 있었지만. 거기 쓰러져 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확인 차 묻겠지만 쉰다는 말의 뜻은 뭐지?”

“굳이 안 물어 보셔도 아시잖아요~ 제가 머릿속을 울리는 잡음에서 해방 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결론은 하나밖에 안 나오니까요.”

정말 지독한 이야기다. 소녀 나름대로 자신이 갈 수 있는 길의 끝에 소녀가 편해지는 방법은

“아아~ 전 죽으면 지옥 가겠네요. 많은 사람을 죽인 마족의 연대책임에 끝이 자살이라니. 최악의 죄를 두 개나 저지른 셈이잖아요.”

소녀 자신이 죽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던 셀리엔느는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에 반응했다.

“우윽..........”

손 위에 떠있던 구체를 지운 소녀는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아마 꺼내어진 사람들의 절망 등 부정적인 감정이 모여서 만들어진 덩어리가 침식하는 대상은 소녀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리라. 육체적으로도 상당한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웃으며 소녀는 말을 이어갔다.

“뭐.. 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에요. 더 이상의 이야기는 없고, 생기지도 않을 예정이에요. 그나저나 슬슬 다시 해가 뜨고 있네요....... 말했었죠? 절 부르실 때에는 이페메라 - 하루살이라고 부르시면 된다고. 하루살이의 하루가 끝나가고 있답니다~ 슬슬 가보셔도 되요. 가만히 두셔도 전 알아서 죽어 없어질테니.”

그렇게 소녀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통보한다. 소녀의 산책이란 것도 이런 이유였으리라. 죽기 전에 하는 마지막 세상구경. 비록 셀리엔느 자신이 쫓아갔기에 제대로 끝낼 수 없었지만.

솔직히 소녀를 살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장담 할 수는 없다. 계속 살게 된 소녀가 겪어야 할 고통이 어느 정도일지 자신도 짐작할 수 없다. 아마 게슈펜트들 보다도 심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리라. 소녀가 듣는 음성을 피할 방법 따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정말 이렇게 끝내도 되는 것일까? 셀리엔느 자신이 위치퀸이 된 이유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그런데도 눈앞의 소녀가 죽음으로서 끝을 맞이하도록 둬도 되는 것일까? 구하고자 하는 노력조차 해보지 않고?

그래선 안 된다. 비록 방법이 보이지 않더라도 포기만은 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포기하면 자기 자신에게 당당해질 수 없다. 그렇게 마음을 정한 셀리엔느는 말을 꺼냈다.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해줄 수 없을 것 같네....”

별다른 반응은 없다. 그저 조용히 웃으며 대답을 하는 소녀.

“셀리엔느씨라면 그러실 줄 알았어요. 어쨌든 상냥하신 분 이시니까요. 여기선 뭐... 저답게 저 나름의 방식으로 제 생각을 밀어붙이면 되는 거겠죠?”

“그래, 난 내 나름의 방식으로 널 구할 생각이니까.”

소녀가 셀리엔느에게 마법을 쏘아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쉴 틈 없이 계속되는 포격과 요격. 서로가 서로에게 끝도 없이 마법을 쏘아낸다. 어느 한쪽이 이기고 있지도 지고 있지도 않다. 쏘아낸 마법이 게속 상쇄되는 것을 반복할 뿐. 현 위치퀸에 최고의 재능을 가진 셀리엔느 상대로 호각인 것이다. 소녀도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하리라. 그러다 문득 소녀가 말을 꺼낸다.

“솔직히 제가 셀리엔느씨한테 가지는 감정은 아주 미묘해요... 제노나힐을 없애서 세계를 지키고, 제 짐이 늘어나는 것을 막아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제가 살아가는 이유를 없애버리셨으니 원망스럽기도 하고, 우리 마족은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죽여가면서 밖에 하지 못했던 일을 다시 누군가가 희생되는 일 없도록 완벽하게 끝내버리셨다는 점에 동경하기도, 질투를 느끼기도 해요.”

딱히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닌 그냥 털어놓는 말. 그렇게 해서 셀리엔느에게 느끼고 있는 미묘한 감정을 처리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런거에요 뭐... 세계를 구해주셔서, 제 짐이 늘어나는 것을 막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느껴지는 원망 질투는 지금 해소하면 되겠죠.”

소녀가 느낀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 그러는 순간에도 마법은 계속 쏘아지고 있었고 소녀는 쏘아낸 마법의 반동으로 점점 밀려가 난간 끝까지 밀려났다.

“감사인사라면 받아두겠지만 원한 해소는 못 받아주겠네. 맞아 줄 생각은 없거든.”

셀리엔느의 말에 키득 하고 웃은 소녀는 위를 한번 보고는 선언했다.

“우와.. 심하네요. 한번 정도는 맞아주셔도 될 텐데. 뭐, 이제 해가 떴네요. 하루살이의 명이 다할 시간이에요. 결착을 지어야죠. 이걸 막아내면 셀리엔느씨의 승, 아니면 제 승. 심플하죠?”

“틀렸어. 내 마법이 이기면 내 승, 네 마법이 이기면 너의 승리야. 어디 한번 전력을 보여줄래?”

소녀는 한번 웃고는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마지막 한 번의 마법. 모여든 마력의 양은 엄청났고 셀리엔느 역시 엄청난 량의 마력을 모았다. 이 정도 힘을 가진 마법에 직격되고 무사할 수 있는 존재란 거의 없으리라.

“쿡....... 그럼 부디 힘을 한번 보여주시길 현 위치퀸님?”

소녀의 말과 함께 마법은 쏘아지고 두 마법이 부딪히는 순간, 섬광과 함께 엄청난 충격파가 발생되었다. 단지 충격파에 밀려난 소녀가 난간에서 떨어졌지만 말이다. 아마도 고의였으리라. 떨어지면서 소녀는 중얼거렸다.

“아아.... 죽어가는 사람들의 감정을 가져왔을 때 느끼긴 했지만... 막상 죽으려고 뛰어내리고 나니 무섭긴 하구나.......”

그리고는 바닥에 부딪힐 순간을 기다리며 눈을 감는다. 실베르부르그 성의 높이가 있는 만큼 떨어지는데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소녀가 기다리던 때는 오지 않았다. 무언가에 잡히는 느낌과 함께

“아쉽겠지만 내 승리네. 높은데서 떨어지는 누구를 붙잡는 일에는 일가견이 있어서 말이야? 해는 뜨고도 꽤 지났어. 넌 더 이상 하루살이가 아니게 됐고 말이야. 이제 패배를 인정하지?”

들려오는 셀리엔느의 목소리. 소녀는 한숨을 쉬면서, 그러나 동시에 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한다.

“풋... 하얀 악마는 바보고양이를 절벽에서 떨어뜨린다였나요......... 저의 패배입니다. 구워먹든 삶아먹든 알아서 하시죠~”

“그럼 간단하네. 첫째 앞으로 자살시도를 하지 말 것. 둘째 그 검붉은색의 덩어리를 꺼내지 말 것. 셋째 베르로랑 마법학원에 입학할 것!”

“거기에 입학인가요....... 전 마족이에요? 사고를 일으키면 어쩌실려구요? 거기다 이 성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납득 시키실 건가요.”

“사람 죽인 적 없다며? 믿을게. 그리고 설득은 굳이 할 필요 없을 걸? 방금 싸움을 구경한 사람이 많으니까. 그 정도 마법 실력이면 내가 사람이라고 하는 보증만으로도 충분해. 군침 흘리는 사람들이 많을테니까.”

“쿡....... 역시 셀리엔느씨는 머리가 좋으시네요. 마지막의 마지막에 와서는 저도 휘말려 버리다니.”

“뭐, 멋대로 뛰어내린 벌은 나중에 주기로 하고. 이제 널 뭐라고 부르면 되지? 더 이상 하루살이는 아니니까 바꿔야지.”

그 말에 잠시 생각하던 소녀는 살짝 웃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데아(Idea/이상). 뭐 결과적으로는 이리 뒤틀려버렸지만....... 저도 원래는 세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누군가의 의지가 모여 생겨났으니까요. 마족으로서의 방식은 못하게 됐지만 지금 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노력해봐야죠....... 머릿속의 잡음 처리부터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까지. 초심으로 돌아가 봐야 하지 않겠어요?”

소녀답다면 소녀다운 이름이다. 그렇게 생각한 셀리엔느 역시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래 이데아....... 줄여서 이데 정도면 되겠지. 사람들은 내가 정리할테니 쉬렴. 내일 부터는 바빠질테니까. 그 원념덩어리를 없앨 방법도 찾아야하고 베르로랑에 입학도 해야 하거든.”

“감사합니다....... 마침 여러모로 피곤하던 참이었거든요....... 그럼 먼저........”

그리 말한 소녀는 이내 잠들었고 그 모습은 아주 평온해보였다. 셀리엔느는 소녀를 방에 내려놓고 몰려든 사람을 정리해두었다. 소녀가 깰 일 없도록 조용히 말이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소녀의 이야기가 한 번의 끝을 맺고 시작을 맞이했다. 소녀가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지는 지켜봐야 하는 일이리라. 소녀가 베르로랑에 입학하고, 나름의 인연을 만들어 가며 걷게 될 길에 나름 기대를 걸어보자. 처음 가졌던 그 이상만큼 바른 길을 가기를 바라며.


Ep 하루살이 소녀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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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우으...원작자가 팬픽의 팬픽을 쓴고 싶을 정도로 말이죠...ㅠㅠ

좀 더... 좋 더 써주세요 잉령님!!!

에필로그라라고 해야할까요, 아니면 사이드 스토리라고 해야할까요, 굉장히 설정 이해도가 높은 팬픽이었습니다.

정작 작가분께서는 걱저하셨습니다만, 천만에요... 오히려 저보다도 이해도가 더...퍽퍽퍽!

암튼!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덧글

  • 잉령 2013/03/10 00:46 # 삭제 답글

    으잌... 작가님 보시기에 설정 문제가 없으셨다니 다행이네요 ㅎ

    쓰다가도 도중도중에 책 보면서 확인하며 썼어요

    좋게 봐주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제가 고3되기 전에 외전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신념군 2013/03/10 14:20 #

    네, 좋은 팬픽과 응원 감사합니다~!
    외전은...여, 열심히 써봐야죠. 쿨럭.
  • 쿰쿤 2013/03/10 23:43 # 삭제 답글

    모바일로 보고 리플달러 왔습니당~!!!!
    정말 원작의 외전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인걸요!!
    재미있었습니다!
  • 잉령 2013/03/11 00:43 # 삭제

    과찬이십니다 ㄷㄷ

    어쨋든 재미있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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